마틴은 영국에서 뛰어난 시계장인 가문의 출신으로 상당히 부유한 집안의 외동아들로 금실로 곱게 이어낸듯한 결 좋은 금빛 머리칼을 자랑하는 사랑스러운 소년이었다. 하지만 부모님들이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시고 마틴의 친척들이 부모님의 재산들을 빼돌렸고 마틴은 하루아침에 가진것은 몸뚱이 뿐인 신세가 되었다. 마틴은 자신의 부모님들과의 추억이 담겨있는 것들마저 전부 빼앗아간 친척들을 증오했으며 무력하게 그저 당하기만 해야 했던 약한 자신을 혐오하고 동시에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이들을 증오했다. 아름다운 꽃을 피울 꽃망울은 자신의 것을 앗아간 이들로 인해 독을 품게 되었다.


마틴은 살아남기 위해 길가에서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생전 부모님들이 말씀하셨던 대로 언제나 정직하게 살아가겠다고 맹세했지만 작은 소년은 살아남기 위해 가슴속에 있던 맹세마저 포기해버렸다. 그는 살기 위해 소매치기를 시작하게 되었고 처음엔 서툰 소매치기 솜씨로 몇 번이나 사람들에게 걸려 많이 맞기도 하고 경찰의 눈을 피해 도망 다니는 생활을 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곱상하게 생긴 탓에 길거리에서 지내면서 노예상인들의 표적이 되거나 질 나쁜 이들의 노리개가 될뻔 한 일들도 있었다. 한번은 그에게 일자리를 소개시켜준다면서 그를 좁고 어두운 곳으로 이끌었고 다행이도 이상한 것을 미리 눈치 챈 그가 서둘러 그들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기 때문에 무사할 수 있었다. 그 뒤로 마틴은 성인이 자신에게 호의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을 두려워했고 멀리했다.


그날도 마틴은 거리를 다니며 적당한 사냥감을 물색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지나다니는 사람들, 길거리에 사는것이 훤히 보이는 낡은 옷을 입은 더러운 몰골의 사람들을 혐오스럽게 쳐다보는 사람들, 구걸하는 사람들과 그들에게 동정어린 시선이나 동전을 던져주는 사람들. 그 많은 사람들 중, 마틴은 보기 드문 흑발의 동양인 사내를 발견했음. 그가 입고 있는 옷은 생전 자신의 아버지가 즐겨 입으시던 상당한 고가의 양복이었고 그가 신고 있는 구두도 쉽게 구하기 어렵다는 브랜드의 구두가 특히 눈에 띄었다. 


‘저 남자 정도라면 지갑도 두둑하니 괜찮겠지? 오늘은 운이 좋은걸!’


마틴은 아마 지갑이 들어가 있어 두툼한 것으로 보이는 그의 주머니를 보고 마틴은 태평한 척 그에게 접근해 그의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그 순간...


"무슨 짓이지?"


사내는 마틴의 손을 잡은 채 차가운 눈으로 마틴의 눈을 노려보았다. 마틴은 사내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가려 했지만 다 큰 성인인데다 웬만한 성인들 보다 더 단단해 보이는 몸을 지닌 사내의 손아귀로부터 쉽게 도망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마틴은 자신의 손을 빼내기 위해 끙끙거렸지만 사내는 그런 마틴을 우습다는 듯이 쳐다볼 뿐이었다.


"대낮부터 대담하게 소매치기를 시도하다니 그 배짱만큼은 칭찬해 주지. 하지만 상대가 나빴군."


마틴은 여전히 강하게 자신의 팔을 쥐고 있는 사내의 손을 강하게 물어버리고는 사내가 고통에 자신의 손을 놓은 사이 있는 힘껏 내달렸다. 자신의 은신처로 돌아온 마틴은 그새 시퍼렇게 멍이 든 자신의 팔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보며 한숨을 쉬었다. 소매치기를 시작한지 꽤 시간이 지났고 점점 경험이 쌓이면서 최근엔 한 번도 걸리지 않았는데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며 한동안은 그 근방에선 조심하리라 다짐했다. 다음날 마틴은 여전히 길거리에서 지냈고 스스로 살아남 기 위해 비록 오른팔이 아팠지만 애써 그것을 참으며 길거리로 나가야만 했다. 평소와 같이 적당한 타겟을 물색하던 마틴의 어깨에 낮선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졌다. 마틴은 혹여 자신에 대해 신고한 누군가에 의해 경찰이 나온 것일까 걱정되어 한껏 굳은 몸을 하고 마치 마리오네트처럼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여기 있었군."

"당신은!"


티엔은 중국에서 온 신흥재벌로 영국 쪽의 기업들과 교류를 트기 위해 방문한 참이었다. 서방에 온 것은 처음이었던 티엔은 영국이란 나라를 구경해 보자는 생각에 거리를 돌아다니니 자신을 흘깃흘깃 바라보는 낮선 이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영국에선 아직은 동양인이 흔하지 않았던 탓인지 어디로 향하더라도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라다녔다. 울타리안의 동물이 된 것 같아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언짢은 기분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을 느끼며 그는 계획을 취소하고 숙소로 가기위해 몸을 돌렸다. 순간 툭 하고 자신의 몸을 치면서 자신의 주머니 쪽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티엔은 본능적으로 소매치기라는 것을 눈치 채고 범인의 어깨를 강하게 잡아 쥐었다. 범인을 잡아 돌려 확인을 해 보니 금발의 카라멜을 녹인 것 같이 부드러운 색의 눈을 가진 꾀죄죄해 보이는 소년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는 것이 사냥당한 토끼 같아 귀엽게 느껴졌다.


빛나는 금을 그대로 갈아 넣은 것 같은 머리칼, 복숭아마냥 한입 베어 물면 그대로 과즙이 흐를 것 같은 뽀얗고 발간 볼, 금빛으로 빛나는 은은한 달을 박아 넣은 것 같은 고요하지만 깊은 눈. 티엔은 순간 혹시 요정이 제게로 날아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 꽤 곱상하게 생긴 것이 곱게 자란 듯 보였지만 곳곳에 보이는 자잘한 상처나 씻지 못한 것 같이 보이는 게 아마 길거리에서 지내는 소년 같아 보였다. 평소 같았으면 생각할 것도 없이 소매치기범을 서에 넘겼겠지만 티엔은 왠지 이 소년에게 흥미가 갔다. 티엔은 소년에게 이번일은 눈감아 줄 테니 시종이 될 것을 권유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티엔이 입을 땐 그 순간 그의 손에서 고통이 느껴져 소년을 잡고 있던 손을 그만 소년의 어깨에서 떼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소년은 그 찰나의 순간에 이미 저 멀리 달려가고 있었다. 방금까지 자신의 손안에 있었던 요정 같은 소년을 떠나보내고 티엔은 허망하게 소년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약간 아릿한 손을 보니 소년이 깨문 것인지 작고 오밀조밀한 잇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꽤나 사나운 꼬맹이로군."


티엔은 소년이 물고 지나간 자국을 슬쩍 핥으며 한쪽 입가를 끌어올렸다. 그날부터 티엔은 그 작은 금빛 새를 찾기 위해 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조수로 데려온 하랑은 겨우 길가에 사는 어린애나 찾는일을 시킨다며 투덜거렸지만 대신 공부를 빼주겠다고 하자 오히려 저가 신이나 길거리를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다. 소년에 대한 정보를 모으면서 조금씩 단단한 우리를 조여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소년을 만났던 거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티엔은 다시 한 번 자신을 한껏 홀려놓았던 작은 요정을 마주할 수 있었다. 혹여나 부서져버릴까 다시 사라져버리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소년의 어깨를 쥔 티엔은 고요한 물에 작고 아름다운 꽃잎이 떨어져 파동이 생기듯 소년과의 재회로 언제나 잔잔하던 마음속이 울렁이는 것이 느껴졌다. 티엔은 자신의 기쁜 마음과는 반대로 소년은 귀여운 눈이 잔뜩 커진 것이 꽤나 놀랍고 두려워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이 마냥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티엔은 소중한 것을 품에 안듯 소년을 안아들고는 제 품에서 벗어나려 버둥거리며 토끼 같은 솜주먹으로 제 가슴을 쳐대는 소년의 행동에 걱정 어린 말을 내뱉었다. 


“그렇게 갓 태어난 새끼마냥 버둥거리다 이대로 떨어지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머리를 부딪히면 크게 다칠게 뻔 한 이런 길바닥에서?” 


분명 걱정에 우러나온 말이었지만 그런 티엔의 말도 남들이 듣기에는 걱정은커녕 협박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뚝뚝하고 무심한 어투였다. 소년은 티엔의 그 말을 듣고는 움직임을 뚝 멈추더니 티엔의 코트를 꼬옥 쥐고는 그의 넓은 가슴에 자그마한 얼굴을 묻었다. 티엔은 자신의 품에 조용히 안겨있는 소년에게서 나는 어린아이 특유의 달달한 내음과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지독하게도 매혹적인 꽃향기와도 같은 소년의 체취를 몰래 마음껏 탐하였다.


by 냥초코 2015. 9. 25. 1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