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우리는 이별을 맞이했다. 기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벌써 한달여간의 섹스리스 생활, 몇 안 되게 함께하던 시간인 저녁시간은 이미 그 의미를 잃은 지 오래였다. 함께 쉬던 침대는 언제나 한쪽이 비어 차게 식어있었다. 그저 남아있는 미약한 체취만이 서로의 존재를 증명해 내 줄 뿐. 그대를 볼 때마다 격렬하게 뛰던 심장도 어느새 식어버려 기저 그대를 닮은 정박으로 그대를 대하였다. 아마 그대 또한. 내 나이 스물아홉. 젊다고 하기엔 이미 흘러버린 시간이 너무나 컸다. 나와 달리 젊고 능력 있는 그대는 아마 금방 나를 잊고 또 다른 인연을 자아내겠지. 


"저 이번에 결혼해요." 


쥐어짜듯 내뱉은 그 말에 그대는 너무나도 담담하게 그저 당연한 말이라는 듯 축하의 말을 내뱉었다. 나 또한 그 무정한 답에 미련 없이 뒤돌았을 터였다. 분명 그랬을 터였다. 가슴 한 구석이 시려온다. 주적주적 내리는 빗물을 그저 하나 되듯 내 몸에 흘려 운다. 서늘한 추위에 몸이 잘게 떨려오지만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저 그렇게 몸을 적셔내고 싶었다. 어느새 도착한 그대와의 공간. 이제는 덧없이 사라질 추억에 불과한 그곳의 문을 나는 열었다. 반기는 것은 외로운 텅 빈 공간. 어쩌면 당연하게도 더 이상 그곳에 당신은 없었다. 어째서일까 흐르는 물이 바닥을 적셔내고 내 마음까지도 축축하게 물 먹인 듯 아릿한 고통을 자아낸다. 의미 없는 외로운 숨소리만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그대가 내게 남기고 간 씨앗은 어느새 물먹은 내 심장에서 자라나 그 꽃을 피워내고 날카로운 가시가 내 심장을 쥐어온다. 조금씩 파고드는 고통은 너무나 힘들어서 붉은 눈물을 뚝뚝 흘려 운다. 이 꽃이 미련인지 그리움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저 이 꽃 또한 시들겠지 그리 믿으며 기척 없는 밤, 아련한 추억만이 가득한 냉기서린 침대를 외로운 온기로 네가 없는 침대를 홀로 데워본다.

기쁨 없는 축복이 넘치는 결혼식. 나와 함께하게 될 여인은 그대와는 조금 다른 여인이다. 그대와 달리 수줍음 많고 그대와 달리 부드러운 몸을 지녔다. 그대의 땀내 나는 향기와는 달리 언제나 달콤하고 향긋한 내음이 내 코를 간질인다. 발갛게 물들인 볼을 하고선 그대를 닮은 결 좋은 검은머리가 넘실거리는 여인이 내게 웃어 보인다. 백합처럼 순결하고 고운 자태를 지는 그녀는 눈같이 하얀 베일을 한 그녀가 나풀나풀 내게로 다가온다. 언제나와 같이 덧대어진 미소를 지어 보인다. 수줍게 고개를 숙이는 여인이 귀여워 보인다.


“정말 아름다워요.”


그녀의 밤하늘 같이 은은한 머릿결을 손에 모셔 입을 맞춘다. 부드러운 꽃 내음이 코를 간질인다. 그러고 보면 그녀와 당신이 아주 닮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유독 맘에 들던 이 흑단 같은 머리칼과 그 또래 소녀답지 않은 당당함을 볼 때면 가끔 아주 가끔 그녀에게서 그대를 찾아보곤 했다. 그리고 지금도. 아 그래 어쩌면 나는 여전히 그대를 잊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저 그 모든 기우는 내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몰랐다. 그대가 아닌 다른 이에게 거짓된 사랑일지라도 그것을 속삭인다는 죄책감. 그리고 그대는 그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그대는 보기보다 여린 이니 모든 것을 알았더라도 내게 부러 묻지 않았겠지. 저벅저벅. 올곧은 발자국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가슴 한 구석이 간질인다.


“여기 있었군 챌피.”

“와주셨군요 티엔.”


언제나와 같이 무뚝뚝한 고운 얼굴이 나를 마주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벅차오름이 느껴진다. 그래 나는 이 재미없는 존재를 지독히도 사랑했다. 그리고 아마도 사랑하고 있다.


“그녀를 보내는 게 좋지 않겠나? 신부의 얼굴을 식 전에 외간남자가 보는 것은 법도가 아닐 터.”


그제야 제 옆에 서 있는 여인이 눈에 들었다. 저보다 큰 낮선 사내가 두렵지 않은 것인지 베일 너머로 그를 바라보는 굳센 시선이 느껴지는 듯 했다.


“잠시 자리 좀 피해줄래요? 미안해요. 그럼 나중에 봐요.”


사랑은 없지만 애정이 깃든 입맞춤을 그녀의 고운 머리에. 그것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느껴진다. 아마 그대의 표정은 언제나와 같이 고요한 빛을 띠고 있겠지. 작은 새를 떠나보내고 그제야 그대를 마주한다. 그대는 여전히 젊고 고아하고 강인한 매력을 자랑했다. 그리고 내가 지독히도 애증 했던 고요함까지도. 그대의 빠질 듯이 깊고 청명한 눈동자가 보인다. 홀린 듯 그저 멍하니 그대의 눈을 바라본다. 아, 비록 읽히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대의 눈동자에 담긴 분노와 끈적이는 욕망까지.


“축하한다.”

“고마워요.”


진심이 숨겨진 먼지마냥 그저 의미 없는 말들. 하지만 우리 둘 중 어느 쪽도 감히 이 모든 것을 그만 둘 자신이 없는 겁쟁이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작은 새를 상처 입힐 자신도, 서로의 관계를 드러낼 자신도, 서로를 붙잡을 자신도. 고요한 적막 속,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눈길만을 끝없이 탐하였다. 오늘은 재단의 인재 마틴 챌피의 결혼식이었다.



by 냥초코 2015. 10. 17. 23:04